오토바이 뒷좌석에 매달려 주문진으로 마실을 가다.



<주문진 마실 인증? 카메라는 동기놈 협찬, 묵옹 촬영>


'마실'은 마을의 방언으로, '마실가다'라는 표현은 다른 마을로 놀러가는 것을 뜻한다고 한다. 이따금 여행 포스팅에서 볼 수 있는 표현인데, 선배들한테 들은 말로는 가까운 곳이 아니더라도 그런 표현을 쓰는 모양이다.

11월 14, 15일 양일 간, 나는 선배들과 함께 주문진으로 마실을 갔다왔다. 버스나 자가용이 아니라, 오토바이를 타고 수원에서 주문진까지 말이다. 고난의 데스로드였다.

어쨌든 지난 토요일은 원래 정기 농구모임이 있는 날이었다. 그런데 전날 밤에 평소에 잘 알고 지내는 선배(이하 묵옹)가 양주를 쏘신다기에 잠깐 그 방에 들렀다. 이미 동기 한 녀석과 다른 선배(이하 평옹)가 와서 술판을 벌일 참이었다. 이번에 먹은 양주는 '윈저 12년산'이라는 놈이었는데, 처음 먹어보는 것이었건만 새삼 양주맛은 다 똑같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닭을 안주삼아 술판이 달아올랐을 무렵, 평옹이 나한테 갑자기 같이 마실을 가자고 했다. 이 선배는 말 하는 스타일이 워낙 술에 물 탄 듯 물에 술 탄 듯 해서 처음엔 농담인 줄 알았는데, 헬멧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하더니 본격적으로 같이 가자고 권했다. 마침 그 날 비가 와서 농구는 못 하겠다 싶어서 일단 같이 가기로 했다(결국 문자로 동기녀석한테 배신자라는 소릴 들었다 ㅋ).

 
<윈저 12년산. 40도 짜리인데 별로 독하진 않았다>

묵옹과 평옹은 보기에도 듬직해보이는 BMW 오토바이를 가지고 있다. 크기도 크기지만 트렁크까지 달아서 어지간한 오토바이는 왜소해 보일 정도이며, 얼라들이 타고 다니는 소리만 요란한 짤랑이와 비교하면 엔진소리부터 차이가 많이 난다. 외관에서도 딱 드러나듯이 이 두 분은 예전부터 오토바이를 타고 함께 전국 여기저기로 마실을 자주 다니는 듯 했다.

원래는 선배 두 분이 가는 여행에 내가 꼽사리로 가는 형국이었으므로, 이것저것 확인할 사항이 많았다. 일단 나는 오토바이용 헬멧이 없어서 묵옹이 여분으로 가지고 있는 헬멧을 빌려야 했다. 하지만 헬멧이 있더라도 사이즈가 맞지 않으면 낭패. 조금 빡빡하긴 했지만 쓸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헬멧 외에도 보호장구, 복장 등을 확인했지만, 평옹은 일단 내일 몸만 오라고 했다.

<노란색이 묵옹, 갈색이 평옹 오토바이. 같은 기종이지만 튜닝이 서로 다르다>

추위에 대비해서 옷이나 든든히 챙겨입고 오라는 말을 들었지만, 정작 마실가는 곳도 모르고 자세한 일정도 모른 채 조금 불안한 마음으로 내 방으로 돌아왔다. 허나 '이런 경험을 이 때가 아니면 언제 할까'하는 생각이 더 앞서 결국 잠도 얼마 못 자고 피곤한 상태로 아침을 맞이했다.

일단 옷을 겹겹히 입었다. 바지는 속에 추리닝을 덧대어 두 겹으로 입었고, 상의는 네 겹이나 겹쳐입었다. 혹시 몰라서 깔깔이와 장갑 두 켤레를 챙겼는데, 나중에 결국 의외로 요긴하게 쓰였다. 신발은 두꺼운 농구화를 신었는데, 이렇게 있는대로 긁어서 껴입으니 관절이 굳는 느낌마저 들 정도였다.

아침 8시 즈음에 작은 가방 하나만 메고 묵옹 방에 도착하여 짐을 꾸렸다. 그런데 어디 멀리 갈 모양인지 챙겨야 할 짐이 많았다. 텐트가 있는 걸 보면 마실가는 곳 근처에서 노숙을 할 모양이었다. 1박을 한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이 시기에 노숙이라니... 침낭과 코펠까지 있는 걸 보면 캠핑은 확실해 보였다.

이리저리 짐을 준비하길 두 시간, 10시가 조금 넘은 시간에 다들 오토바이에 올랐다. 나는 물론 평옹 오토바이 뒷좌석에 탔다. 옷을 두껍게 입고 평옹 허리를 잡고 타야하니 그 자세가 참으로 안습이었다. 자세는 그렇다쳐도 얼마나 타고 가야하는지 몰라서 은근히 걱정되었다. 이따금 예전에 묵옹 오토바이를 타본 적은 있지만 오래 타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뒷좌석에 탄 나. 관성질량 80킬로그램 이상>

뭐가 어쨌든 두 오토바이는 수원을 벗어나 용인 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수도권을 빠져나갈 때 멀미를 하기 시작했는데, 평옹 말에 따르면 매연 때문이라고 했다. 평소에 멀미를 잘 하는 체질이라 오토바이도 멀미를 할 것 같았는데, 알고보니 매연의 역한 냄새때문에 멀미를 할 줄이야. 그래서 수도권을 오토바이로 달릴 땐 마스크가 필수라고 한다.

그렇게 시내를 빠져나가면서 교통표지판을 보니 42번 국도를 달리고 있었다. 점점 동쪽으로 간다는 뜻이었다. 중간에 편의점에 들려 간단히 요기를 하고 다시 달리기를 몇 시간, 한우의 고장 강원도 횡성까지 다다랐다. 설마 횡성 고깃집 마실... 인가 했더니 그대로 논스톱 주행, 해발 900미터가 넘는 고개를 넘기도 했다(무슨 '령'이었는데 잘 기억이 안난다).


<고개를 오르기 전. 노상방뇨의 추억이...>

강원도 산중에 들어서니 눈이 쌓인 광경을 볼 수 있었다. 아마 해발 700미터 정도부터 보였던 것 같던데, 더 높은 산 정상은 마치 만년설마냥 하얗게 보였다. 풍력 발전소도 볼 수 있었고 눈이 즐겁긴 했지만, 그야말로 손발이 오그라들 정도로 추웠다. 흔히 추워서 손이 곱는다고들 하는데 딱 그 말 그대로였다. 상당히 두꺼운 장갑을 꼈음에도 불구하고 손이 시려웠다.

오후 두 시가 넘어 평창군 소재의 어떤 마을에서 늦은 점심을 먹었다. 강원도 산간을 오토바이를 타고 평균시속 60킬로미터로 몇 시간이나 달렸으니 체감온도는 이미 영하권을 한참 지났다. 이젠 몸 전체가 곱는 수준이었는데 앞에서 맞바람을 받았던 두 선배들은 오죽할까. 이가 덜덜 떨려서 속을 달랠 겸 순대국밥을 먹었다.


<더 안먹어도 배불렀다. 은근히 인심이 후덕한 곳>

그렇게 식사를 하고 있노라니 주방 아주머니가 어떻게 이 추운날씨에 오토바이로 여행을 하냐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러면서 식사가 부족하면 더 달라고 했는데, 그 마음씀씀이가 참 고마웠다. 결국 아주머니가 김장을 하러 나간 사이에 다 먹어버려 더 먹지는 못했지만서도 ㅋ

뜨거운 국물로 속을 풀고 기름을 넣은 후, 나는 다시 오토바이에 올라타 평옹 허리춤에 매달렸다. 또 그렇게 달리기를 몇 시간, 해가 뉘엿뉘엿 넘어갈 무렵에 '주문진'이란 교통표지판을 볼 수 있었다. 바다가 보이는 7번 국도를 달릴 즈음엔 이미 해가 산 속으로 넘어가 어둑어둑했다.

<순대국을 먹은 그 동네에서 한 컷. 원츄 쌔우기>

성수기가 한참 지난 바닷가는 역시 썰렁했다. 커플로 보이는 젊은이들(?)이 이따금 눈에 띌 뿐이었다. 항구를 지나 잘 정비된 해수욕장에 도착하니 6시 즈음. 바닷바람이 몸 여기저기를 찔러댔다. 텐트를 칠 곳을 찾아 잠시 헤맸는데 의외로 쉽게 찾았다. 해수욕장 뒷편에 있는 파출소와 샤워장 뒤쪽에 해송이 드리워진 모래사장이 그곳이었다.
 

<오붓한 텐트 두 개. 나는 평옹과 잠 못 이루는 밤을 데헷>

오토바이를 세워놓고 바로 짐을 풀어 텐트를 치기 시작했다. 1인용 텐트 두 개를 광속으로 치고 바로 저녁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근처에 편의점이 있었지만 맥주 한 캔이 2000원이나 했다. 결국 묵옹은 커다란 마트를 찾아 장을 보러 나갔고, 평옹과 나는 스팸을 굽고 맥주를 마시며 묵옹을 기다렸다.

묵옹이 장을 보고 돌아와 본격적으로 저녁을 먹기 시작했다. 버너를 가져오긴 했는데 캠핑 분위기를 내보자며 숯을 사온 묵옹. 처음엔 불이 잘 붙을지 회의적이었으나, 묵옹이 불판에 숯을 올려놓고 굽는 투혼을 보이더니 결국 숯불에 이것저것 구워먹기 시작했다. 삼겹살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소시지 4개와 과자, 양송이 스프까지도 금세 다 먹어버렸다.
 

<삼겹살 기름때문에 다 태워먹을 기세였다>

그 이후론 불을 계속 지폈다. 이상하게도 각목이 제법 있어서 땔감으로 사용했다. 게다가 주변에 널린 게 솔잎이라 이것도 죄다 넣고 태웠다. 평옹과 나는 일찌감치 텐트에 들어가 침낭을 펴고 잘 준비를 했는데, 묵옹은 우리가 자리에 다 누울때까지 불을 지키고 있었다. 침낭에서 자는 건 참 오랫만이었는데, 그렇게 추운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편하게 잠을 잘 수 있었다.

다음날 아침, 텐트 안으로 들어온 희미한 빛 때문에 눈을 떴다. 핸드폰을 보니 7시가 조금 안 된 시각. 곧장 일어나 밖으로 나오니 어제보다 더 추운 날씨에 몸 전체가 흠칫흠칫 놀랐다. 어차피 더 자봐야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 바로 바닷가로 나왔는데, 운좋게 일출 광경을 볼 수 있었다. 나 말고도 일출을 감상하러 온 다른 일행도 꽤 많았다.

핸드폰으로 사진을 몇 장 찍고 텐트 주변을 서성거렸는데, 추워서 미칠 지경이었다. 바람까지 억수로 불어 개인적으론 혹한기 훈련을 또 하는 느낌이었다. 텐트에서 잘 때는 바람이 안 들어와서 몰랐는데, 이렇게 바람이 부니 체감온도가 확 떨어졌다. 그렇게 한 시간 넘게 주변을 돌아보고 두 사람을 깨웠다.


<내 폰카로 찍은 해돋이. '이거 매임' 수준이 되어버렸구만>

묵옹은 별로 안 추운 모양인지 의외로 쌩쌩했다. 곧바로 버너로 라면을 끓이기 시작했는데, 이 때 먹은 라면은 진짜로 소중한 맛이었다. 밖에 나오면 뭐든 맛있다고 느낀다고 하지만, 조금은 극한 상황이다보니 더 맛있었나보다. 평옹이 일어나고 라면을 더 끓인 후 밥까지 넣어서 아침을 해결하고, 텐트를 걷으며 짐 정리를 시작했다.


<같은 라면이라도 방에서 먹을때랑 천지차이였다>

신기한 것은 그 많은 짐들이 전부 오토바이에 실린다는 점이었다. 비록 1인용 텐트 두 개라고는 하지만 침낭 세 개에 잡다한 짐들까지 전부 실을 수 있었다. 애초에 출발할 때랑 거의 똑같은 양이긴 했지만서도.

10시가 넘어 다시 수원으로 향하는 긴 여정을 시작했다. 그 전에 잠시 오토바이를 타고 조금 달리다가 내려서 바닷가를 구경했다. 이른 아침에 봤던만큼 사람이 많진 않았지만, 간간히 가족 단위로 놀러온 일행을 볼 수 있었다. 늦가을 바다보다는 동해안에서 모래사장을 볼 수 있었다는 것이 신기했다. 어릴 때 추억을 떠올려보면 대체로 자갈뿐인 해안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어쨌든 웃기는 포즈로 사진을 몇 장 찍고 다시 수원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구불구불 산길이 많았던 어제와 달리 돌아가는 길은 조금 다른 것 같았다. 6번 국도를 타다가 평창 근처에서 쉰 것을 보면 비슷한 것도 같은데 유난히 큰 길이 많았다. 그래서 시속 100킬로미터 이상으로 달릴때도 종종 있었다. 가끔 옆에서 바람이 치고 들어오면 오토바이가 휘청거리기도 했는데, 무서웠다 ㅅㅂ


<우왕ㅋ굳ㅋ>

점심은 편의점에서 주먹밥과 라면으로 때웠다. 양이 많아 든든하긴 했으나, 순대국만큼 속이 풀리진 않았다. 게다가 이 날은 유난히 바람이 강해서 결국 노파심으로 가져온 장갑과 깔깔이까지 동원하게 되었다. 그래도 춥긴 마찬가지여서 수지 부근에 다다를 무렵엔 거의 정신력으로 버티는 수준이었다.

경기도로 들어서면서 도로가 가끔 막히긴 했지만, 기본적으로 뻥 뚫린 도로가 많아 평옹은 신나게 기어를 올렸다. 100킬로미터 이상은 기본이고 다른 차들을 추월할 땐 마치 롤러코스터를 타는 기분이었다. 그 땐 추운 것보다도 무서워서 몸을 웅크리고 평옹 등 뒤에 숨으려고 정신이 없었다.

이윽고 익숙한 풍경이 보이고 수원에 들어서자, 나는 평옹 어깨를 주물러주는 등 여유로운 모습을 보였다. 허나 그것도 잠시, 저녁 다섯 시 즈음 묵옹 방 앞에 도착해서 내려보니 온 몸에 마치 전기충격을 건 듯 덜덜 떨려서 주체를 할 수가 없었다. 묵옹은 왜 이렇게 떨고 있냐며 핀잔을 주기도 할 정도였다.

오토바이에 실었던 짐을 전부 정리하고, 평옹은 다시 인천으로 올라가야 하기에 근처 중국집에서 서둘러 저녁을 먹었다. 허나 나는 뜨듯한 짬뽕을 먹었음에도 불구하고 몸이 심하게 떨렸다. 그러니 다시 한 시간 넘게 오토바이를 타야하는 평옹은 어쩌나 하고 걱정이 되기도 했다. 어쨌든 그렇게 평옹을 떠나보내고 나도 다시 내 방으로 돌아왔다.


<인천으로 돌아가는 평옹. 무사히 들어가셨을라나 모르겠네...>

거의 왕복 한 나절을 꼬박 오토바이에 매달려 다녀온 마실. 내가 생각해도 이건 무모했다. 오토바이가 위험한 것은 이미 연예인들의 사고로 인해 널리 알려진 사실이고, 묵옹도 계속 강조했던 사항이었다. 그래서 보호장구를 이것저것 덧대었지만, 오토바이 뒤에 타는 것 자체가 상당히 위태로운 일이라서 줄곧 불안하기 그지없었다.

그러나 이 선배들은 참 얌전하게 운전을 하는 스타일이라고 한다. 라이더 수트나 기타 보호장구도 잘 갖추고 있으며, 교통법규도 잘 지키는 것 같았다. 그런 점에서 난 선배들한테 무척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특히 평옹은 갖가지 옷에 가방까지 맨 80킬로그램짜리 나를 뒷좌석에 태우고 신경써서 운전하느라 무척 고생을 했다.

포스팅을 쓰고있는 지금 이 시간에도 어깨라든지 허리가 뻐근할 정도로 아프긴 하지만, 언제 또 이런 경험을 해보랴. 오토바이를 타고, 그것도 뒷자석에 타고 강원도 산자락을 넘어 동해까지 갈 수 있는 경험은 평생 한 번 겪기도 힘들 것이다. 게다가 별다른 사고도 없이 말이다. 다시 또 가자고 하면 당분간은 사양하겠지만, 이토록 신선한 여행을 할 수 있다면 언젠가 또, 조금은 편하게 하고픈 생각도 든다.

이 자리(?)를 빌어 고생하신 평옹과 묵옹께 다시한번 감사를...


by 쒸갈 | 2009/11/17 05:41 | 일기는 이글루에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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